“알다”와 “know”
(오랜만에 블로그 업데이트)
인식론 시간에, 우리는 다음과 같은 함축 관계를 통해 knowledge-that의 사실 함축성factivity을 배운다:
$$s\text{ knows that }\varphi\supset\varphi\tag{Factivity}$$
이 과정에서 한국인 학습자가 겪는 어려움은 다음과 같다: “하지만 한국어 ‘알다’는 이런 성질을 갖지 않지 않아? 가령, ‘철수는 민수가 시험에 합격할 것이라고 안다’는 민수가 시험에 합격할 것이 아니더라도 철수의 사고 여하에 따라 참이 될 수 있는걸!” 즉, knowledge-that의 사실 함축성과 달리 ‘지식’은 사실 비함축적non-factive 개념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만일 ‘지식’이 knowledge-that과 달리 사실 비함축적 개념이라면, 우리는 인식론 공부를 잘못 하는 셈이 되거나, 아무리 인식론 공부를 열심히 해도 ‘지식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부분적 해답만을 얻게 되고 만다. 한국인 철학도들에게는 정말이지 절망적이지 않을 수 없다.
블로그에 신경 쓰지 않던 사이 이에 대한 답을 지난 2022년, 나름대로 제공해 보았다. (논문으로 발표하기는 했지만 그걸 구구절절 설명하는 건 민망하니 대략의 얼개만 소개해 놓는다.)
일단, “…가 …라고 안다” 꼴의 구문과 달리, “…가 …임을 안다” 꼴의 구문은 사실 함축적임을 염두에 두자. (전자를 ‘라고 지식’ 귀속 문장, 후자를 ‘임을 지식’ 귀속 문장이라고 하자.) 즉, (1)로부터 (2)를 추론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begin{align}&\text{철수는 민수가 합격할 것임을 안다;}\tag{1}\\ &\text{민수는 합격할 것이다.}\tag{2}\end{align}$$
‘라고 지식’과 달리 ‘임을 지식’은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것이다.
물론 여전히 문제는 남는데, knowledge-that이 명제지propositional knowledge의 일반적 사례인 반면 ‘라고 지식’이 ‘임을 지식’에 비해 덜 일반적인 사례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인식론 공부를 열심히 해도 ‘지식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부분적 해답만을 얻게 되고 만다’라는 상태는 유지된다.
그런데 우리는 ‘라고 지식’이 ‘임을 지식’과 핵심적인 특성을 공유함을 볼 수 있다. 이는 바로, ‘라고 지식’은 인식 주체에게 합리적 믿음을 귀속한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나는 새가 공룡의 후예라고 알고 있소”라고 하는 상황에서, 혹자가 “그걸 어떻게 아오?”라고 반문했을 때 그가 “그게…”라며 얼버무린다 하자. 그러면 반문자는 “당신, 뭘 알기는 무슨, 그냥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구만!”이라며 꾸짖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라고 지식’이 갖는 두 특징을 발견한다:
- ‘라고 지식’은 참을 함축하지 않는다 → 이는 ‘임을 지식’과 차이나는 지점이다.
- ‘라고 지식’은 정당화된 믿음을 함축한다 → 이는 ‘임을 지식’과 공통된 지점이다.
이제 거의 다 왔다. 위의 두 특징으로부터, 혹자는 ‘라고 지식’이 ‘정당화된 믿음’에 다름 아닌 개념이라고 보고자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는 두 측면에서 문제적이다. 첫째로, 그 경우 ‘라고 지식’은 ‘임을 지식’보다 더 단순한 ‘지식’ 개념이 되는데, 이는 ‘라고 지식’을 보다 일반적 지식 개념이 되게 만들어 knowledge와 ‘지식’의 등가성을 위반한다. 둘째로, 이는 ‘라고’의 논리적 역할을 일관되지 못하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라고’가 주어진 명제의 평가 세계를 임의의 세계로 (나는 이를 “‘따르면’ 세계”라고 부르는데,) 재설정하는 논리적 기능을 한다는 가설을 세웠다. 그리고, 모종의 논리적 도구를 사용해 그러한 재설정 이후에도 정당화 상태와 믿음 상태에 대한 평가는 유지되도록 했다. 그 결과, 주어진 최종적 분석은 다음과 같았다: $$\eqalign{&\text{$s$가 $\varphi$라고 안다}\\ \iff &\text{$s$에 따르면, }(\varphi\land J(s, \varphi)\land B(s, \varphi))}\tag{라고 지식}$$
분석항의 괄호 안에 등장하는 식은 지식에 대한 JTB 분석에 상응하며, 이는 JTB 분석을 받아들일 수 있는 이가 위 분석을 지식의 일반적 개념이 보존된 사실 비함축적 지식 귀속 사례에 대한 올바른 분석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퍼즐 해결!
나중 생각) 여기에서의 논지를 발전시키던 중, 차라리 지식 연산자의 개념적 역할만을 보존하고 따르면 연산을 적용했으면 되는 문제였다는 생각을 했다. 다만 이 경우에도 이런 저런 문제가 남으리라는 생각이 드는데, 차차 정리해 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