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양'
- 역설이란 두 방식으로 해소될 수 있다. 하나는, 역설을 일으키는 진술들이 그 명제차원에서는 모순되지 않음을 규명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진술들 중 하나 또는 몇몇을 제거함에 따라 모순을 제거하는 것이다. 전자는 사실, 일관된 진술 집합 및 그것을 비일관적이라고 생각하는 우리의 사고 사이의 대립에서 후자를 제거하는 것에 해당한다. 결국 역설의 해소는 모순의 제거이다.
- 초기 분석철학자들은 철학의 과제를 ‘명료화’라고 생각했다. 여기에서 명료화란 단지 그 외연에 대한 엄밀한 정의를 내리는 것이 아니다. 모호하거나 혼란한 개념을 제거하거나, 수정하거나, 분류함을 통해 개념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재편하는 작업이다.
- 이른바 ‘개념공학’을 수행한다는 이들은 모순을 함축하거나 정치적으로 문제적인 등 내/외적으로 문제적인 개념을 제거하고, 나누고, 재정의함을 통해 그 개념이 낳는 문제를 제거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들 중 몇몇이 주장하길, 이러한 제거의 작업은 개념의 외연 자체를 바꾼다는 점에서, 세계 자체의 재편이다.
이 이야기들에서 공통된 주제는 대립하는 두 생각을 둔 뒤 하나를 지우거나, 둘 모두를 재구성하는 일이다. 이는 전통적으로 ‘지양’이라는 개념을 통해 이해되는 과정이었다. 다만 이전에 지양에 관해 이야기할 때 그것이 세계에 대한 정신의 파악에 관한 문제로 이야기되고 있었다면, 여기에서는 그 지양의 작업을 능동적으로 수행하는 방식이 논구되고 있었다고 할 수 있겠다(결국 러셀은 헤겔의 현현이었을까?). 그런데 이런 능동적 작업은 어떻게 그 정당성을 얻을 수 있는 것이란 말인가? … 내공이 부족한 탓에 답을 못 하겠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