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사실문Counterfactuals

Counterfactuals(SEP)[링크]

조건문(if ... then ...)에 대한 실질 함축(material implication) 해석에 따르면 전건이 거짓일 때 조건문은 공허히 참(vacuously true), 즉 후건의 성립 여부와 무관하게 참이다. 그러나 다음의 경우들에서처럼, 전건이 사실에 반대되는(contrary-to-fact) 조건문이 공허하지 않게 참이거나, 또는 거짓인 경우가 있다:

  • 만일 제18대 대선에서 문재인이 당선되었더라면, 최순실이 연루된 국정 농단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 만일 박근혜가 탄핵되지 않았더라면, 문재인이 2017년 5월 9일 치러진 선거를 통해 제19대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것이다.

첫 번째 문장은 공허하지 않게 참이다. 후건이 정반대 상황을 표현할 경우, 그 조건문은 (적어도, 최순실이 청와대에 개입하지는 못했으리라는 이유로부터) 거짓이 될 것이며, 또 가령 후건에 "1+1=1이었을 것이다" 따위가 들어온다면 말할 것도 없이 거짓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두 번째 문장은 명백히 거짓인데, 박근혜가 탄핵되지 않았더라면 제19대 대선은 2017년 12월에 치러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엄밀 함축 분석

이로부터 드러나는 실질 함축 해석의 문제는 가정법 조건문에 대한 엄밀 함축(strict implication) 해석을 통해 주어질 수 있다고 생각되었다. 엄밀 함축이란 다음과 같이 정의될 수 있다:\[\text{$p$가 $q$를 엄밀 함축한다}\defeq \Box (p \supset q)\tag{SI}\]

한편 엄밀 함축 해석이 주어진 최초의 시점에서와 달리 양상 논리에 대한 크립키의 의미론은 이를 다시, "접근 가능한 모든 가능세계들에서, \(p\supset q\)이다"로 이해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러나 엄밀 함축 해석은 여전히 그 안에 실질 함축을 포함하는 탓에, 스톨네이커와 루이스가 각각 제시한 다음의 반직관적인 귀결을 낳는다:

  • (Stalnaker, 1968)
    만일 에드거 후버가 공산주의자였더라면, 그는 반역자였을 것이다.
    만일 에드거 후버가 러시아인으로 태어났었더라면, 그는 공산주의자였을 것이다.
    — 따라서,
    에드거 후버가 러시아인으로 태어났었더라면, 그는 반역자였을 것이다.
  • (Lewis, 1973)
    만일 보리스가 파티에 갔었더라면, 올가 또한 갔었을 것이다.
    만일 올가가 가지 않았었더라면, 보리스 또한 가지 않았었을 것이다.

에드거 후버에 관한 두 전제는 받아들임 직한 반사실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엄밀 함축 해석을 따를 경우, 실질 함축이 갖는 이행성(transitivity)으로 인해 에드거 후버에 관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게 된다. 한편 보리스와 올가에 관한 두 문장은 대우 관계이다. 그런데 보리스가 파티에 가지 않을 이유가 올가를 보기 싫다는 이유 정도이고, 올가는 파티 광인 상황을 생각해 보자. 그렇다면 첫 번째 명제는 참이며, 두 번째 명제는 거짓이다. 실질 조건문과 그 대우는 동치이므로, 이러한 진리치의 간극은 이해될 수 없다. (이 외에도 엄밀 함축 해석의 여러 문제들이 있으나, 여기까지만 소개하도록 하자.)

스톨네이커-루이스 분석 (표준적 분석)

이에 대한 대안으로 나온 모델은 유사성에 근거한 스톨네이커-루이스 분석이다. 이 분석은 먼저 세계들의 유사성에 따른 순서짓기(ordering)를 가정한다. 그렇다면 이제 모종의 '거리 측정'이랄 만한 과정을 도입할 수 있을 것이다. 대략적인 아이디어는 이렇다. 선택 함수 \(f\)를 상정하자. 이 함수는 세계와 명제들의 순서쌍 \((w,~p)\in W\times P\)을 받아 그 중 가장 유사한 세계 또는 그러한 세계들의 집합을 내놓는다. 이제 가정법 조건문 "\(p\counterfactual q\)"(만일 p였더라면, q였을 것이다)의 진리값은\(f(w,p)\)(의 모든 원소들)에서 \(q\)가 참일 경우 참, 그렇지 않다면 거짓이 된다.

위의 문단에서 f의 치역에 관한 설명이 애매한데, 이는 이에 관해 스톨네이커와 루이스가 불일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톨네이커는 단일성 제약(uniqueness constraint)을 받아들인다. 즉, f는 기껏해야 하나의 세계를 내놓는다. 반면 루이스는 이를 거부하며, f가 복수의 세계를 원소로 갖는 집합을 함숫값으로 가질 수 있음을 주장한다. 이러한 차이로부터, 스톨네이커와 달리 루이스의 반사실문 의미론에는 연산자 "\(\countermight\)"(만일 ...였더라면, ...였을지도 모른다)가 포함되며, 이 경우 "\(p\countermight q\)"의 진리값은\(f(w,p)\)의 원소들 중 \(q\)가 참인 세계가 있는 경우 참, 그렇지 않다면 거짓이 된다. (이와 연관된 스톨네이커와 루이스의 다른 불일치가 있으나, 여기까지만 소개하도록 하자.)

이 '표준적 분석'을 따를 경우, 엄밀 함축 분석에서 발생하는, 위에서 소개한 문제 및 소개되지 않은 여타 문제들은 발생하지 않는다. 표준적 분석에 따를 경우 반사실 조건문은 실질 함축이 갖고 있는 성질, 가령 단조성(monotonicity)이나 이행성 등을 갖지 않기 때문이다. 후자의 경우만을, 에드거 후버 사례를 다시 가져와 설명해 보자. 에드거 후버에 관한 위의 세 문장을 표준적 분석 하에서 검토할 때 이행성이 성립하지 않는 이유는 분명히 드러난다.

첫 번째 전제와 결론은 에드거 후버가 러시아인으로 태어난 최근접세계에서 각각의 후건이 성립하는지에 따라 진리치가 결정되는 반면, 두 번째 전제는 에드거 후버가 공산주의자로 태어난 최근접 세계에서 그 후건이 성립하는지에 따라 진리치가 결정된다. 그런데 후자의 경우, 최근접 세계는 에드거 후버가 러시아에서 태어난 그러한 세계라기보다는 단지 그가 미국인이면서 공산주의자인 그러한 세계일 것이다. 따라서, 두 번째 전제를 경유하여 결론을 이끌어낼 수 없다.

반가능문

한편 표준적 분석의 의미론은 불가능한 전건이 올 경우 조건문의 진리값을 참으로 할당시킨다. 즉, (직설법) 조건문에 대한 실질 함축 분석이 거짓 전건이 오는 조건문을 공허히 참이게 하듯, 가정법 조건문에 대한 표준적 분석은 불가능한 전건이 오는 조건문을 공허히 참이게 한다. 반사실문의 발견에서와 마찬가지로, 유사한 발견이 불가능한 전건을 갖는 가정법 조건문에 관해 이루어져 왔다. 다음의 조건문들을 생각해 보자(참고로 일차논리는 완전하다; 즉, 일차 논리의 모든 참인 문장은 모두 일차 논리의 언어를 통해 증명 가능하다):

  • 만일 일차 논리가 불완전했더라면, 괴델은 24세에 요절했었을 것이다.
  • 만일 일차 논리가 불완전했더라면, 괴델은 90세까지 장수했었을 것이다.

두 문장의 후건은 서로의 부정을 함축한다. 그렇다보니 우리는 이 둘 중 하나의 문장이 맞지, 두 문장이 동시에 맞지는 않으리라고 기대한다. 그러나 이 문장들의 전건이 논리적 거짓임에 따라, 표준적 의미론은 이 두 문장이 모두 사소하게 참이라고 예측한다.

물론 위의 사례는 전건과 후건이 별 관계가 없는 탓에 참인지 거짓인지가 알쏭달쏭한 면이 있는데, 후건을 보다 주제에 유관하게끔 바꾸더라도 사정은 비슷하다:

  • 만일 일차 논리가 불완전했더라면, 일차 논리의 문장 중 일차 논리의 언어를 통해 증명 불가능한 문장이 있었을 것이다.
  • 만일 일차 논리가 불완전했더라면, 일차 논리의 문장 중 일차 논리의 언어를 통해 증명 불가능한 문장은 없었을 것이다.

이 두 문장 중 전건이 참이며 후건이 거짓이라는 것은 "불완전성"의 의미로부터 매우 명확하다. 반면 위에서와 같은 이유로 표준적 의미론은 이 두 문장이 모두 사소하게 참이라고 예측하는데, 이는 문장에 대한 우리의 직관과 들어맞지 않는다.

이러한 문장들(즉, 형이상학적/수학적/논리학적 거짓이 전건에 들어오는 조건문)은 오늘날 반가능문(Counterpossibles)이라고 불린다. 반가능문에 대한 우리의 직관을 설명하기 위해 철학자들은 불가능세계(impossible worlds)나 인식적 가능성(epistemic possibility), 초내포(hyperintensionality)와 같은 이론적 요소를 추가하여 반가능문에 대한 보다 그럼직한 이론을 구성하고자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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