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료 조건을 이해하기

대부분의 경우, 초급 논리학 첫 시간에 우리는 질료 조건(\(\rightarrow, \supset\))에 대한 다음과 같은 정의를 배운다:\[\text{For any wffs $\phi$ and $\psi$, }\phi \supset \psi \defeq\neg\phi \lor \psi \tag{$\supset$}\]

이와 동시에, 우리는 \(\phi \supset \psi\)를 자연어 문장꼴 “if \(\phi\), then \(\psi\)”와 동일시하기로 배운다. 이에 앞서 \(\neg\)나 \(\lor\)을 각각 자연어 표현 “not”과 “or”을 통해 동일시하기로 배움을 고려할 때, 우리는 질료 조건에 대한 두 방식의 이해를 함께 배우는 셈이다. 한편으로, 우리는 질료 조건을 “if ANTE, then CONS”로, 다른 한편으로는 “not ANTE, or CONS”로 배우게 된다.

이 때 혼란이 시작된다. “if ANTE, then CONS”와 “not ANTE, or CONS”는 도저히 일상적으로 동치가 아닌듯 보이기 때문이다. 이는 \(\lor\)을 배울 때 생기는 혼동과는 미묘히 달라 보인다. 우리는 \(\lor\)을 “or”과 동일시하는 과정에서 약간의 어려움을 겪기는 하지만, 이는 “or”이 \(\veebar\)에 상응하는 쓰임을 갖곤 하기에 나오는 어려움이다. 단지 이런 종류의 어려움이라면 우리는 “\(\supset\)을 가정법 조건문의 의미를 제한 ‘if ..., then ...’으로 읽어 보시오”라는 명령만으로 혼란을 해소할 것이겠다. 그러나 이 때에도 도무지 위의 두 구문은 동일한 것으로 보이지가 않는다.

여기에서는 이 혼란을 해소할 수 있는 한 가지 설명을 제공하고자 한다. \(\phi \supset \psi\)이 의미하는 바를 ‘\(\phi\)를 가정할 때, \(\psi\)'라고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설명의 핵심이다. 논리학사에서 질료 조건이 이용된 과정과 일치하지는 않지만, 이하의 설명은 질료 조건이 직설법 조건문(의 어떤 용법)과 동일시될 만한 직관적 근거를 보여준다. (주의: 이하는, 어떤 의미에서도, \(\supset\)의 정의에 대한 증명이 아니며, 단지 이해를 돕기 위한 설명일 뿐이다.)


먼저 전통적인 두 논리 법칙인 배중률(LEM)과 폭발률(EFQ)을 가정해 보자:\[\begin{align}&\text{for any proposition $P$, }P\lor\neg P\tag{LEM}\\&\text{for any proposition $P$, }\bot \implies P\tag{EFQ}\end{align}\]

이어 다음과 같이 모순(\(\bot\))을 정의하자:\[\text{for any proposition $P$, }P \land\neg P \implies \bot \tag{$\bot$}\](여담으로, EFQ와 더불어 \(P \land\neg P \equiv\bot\)이 성립하게 된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추론이 직관적으로 타당하다고 생각해 보자:\[False(P), P\lor Q \sslash Q\tag{1}\]\[P, Q \sslash P\land Q\tag{2}\]

이제 어떤 임의의 명제 \(P\), \(Q\)에 대해 다음과 같은 논변을 고려해 보자:\[\text{$P$를 가정하자. ... 따라서, $Q$이다.}\tag{3}\]

(3)이 성립하는 것은 다음의 두 경우이다:

Case 1) \(P\)가 참이면서 \(Q\)가 참이다.

\(P\)를 가정하자. 우리는 증명 과정에서 어떠한 참인 명제이든 도입할 수 있다. 가령 이 경우, \(Q\)를 도입할 수 있다. 따라서 \(P\)가 참이면서 또한 \(Q\)가 참이라면 (3)이 성립한다. \(P\)를 가정한 뒤 \(Q\)를 올바르게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Case 2) \(P\)가 거짓이다.

\(P\)를 가정하자. 그런데 LEM과 (1)에 의해, 우리는 어떠한 거짓인 명제에 대해서도 그 부정을 도입할 수 있다. 가령 이 경우, 가정에 따라 \(\neg P\)를 도입할 수 있다. 또 우리는 (2)에 의해 증명에서 등장한 어떠한 두 명제에 대해서도 그 연언을 취할 수 있다. 따라서 \(P \land\neg P\)이다. 그런데 이는 모순을 함축한다. 또 EFQ에 의해 모순은 임의의 명제를 함축한다. 따라서, 임의의 \(Q\)가 함축된다. 역시나 \(P\)를 가정한 뒤 \(Q\)를 올바르게 얻었으므로, (3)이 성립한다.

또, 이 두 경우에만 (3)이 성립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LEM에 의해 이제 가능한 경우는 \(P\)가 참이면서 \(Q\)가 거짓인 경우 뿐인데, 이 때 (3)은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land\)와 \(\neg\)의 정의로부터, 이 두 경우는 (3)과 같은 꼴의 논변이 성립하는 것이 다음의 두 경우임을 보여준다: \(P\land Q\), 또는 \(\neg P\). 그렇다면 다시, \(\lor\)의 정의로부터, 우리는 해당 논변이 성립하는 것이 다음과 같은 경우임을 생각함 직하다: \((P\land Q)\lor (\neg P)\). 이어 분배 규칙을 사용할 때(분배 규칙이 이미 증명되었다고 하자), 이는 \((P\lor\neg P)\land (\neg P\lor Q)\)와 같으며, 이 연언문의 좌항이(LEM에 의해) 항진 명제이므로, 이는 \(\neg P\lor Q\)와 동치이다. 그리고 이는 위에서 우리를 혼란스럽게 한, \(\supset\)의 정의와 같다.

우리가 어떤 것을 증명하는 과정을 다시 생각해 보자. 증명 과정에서 우리는, 어떤 명제 \(P\)를 가정하면서, “이제 \(P\)라면 \(Q\)이다”라고 말하곤 한다. 이러한 용법에서 출발한다면, "if \(P\), then \(Q\)"의 의미는 위에서 보았듯 \(P\supset Q\)와 똑같아질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이해가 주어진다면,  \(\phi \supset \psi\)를 자연어 문장꼴 “if \(\phi\), then \(\psi\)”와 동일시하는 것은 전혀 혼란을 일으키지 않게 된다.


지금까지의 메타 논리적 설명은 일종의 교수법적 의의를 갖고 있다. 때로 질료 조건의 정의를 가르치고 이에 대응되는 자연어 번역을 가르칠 때, 학생들이 겪는 어려움을 ‘이것은 단지 정의의 문제이다’와 같은 식으로 넘기려는 유혹이 들기 마련이다. (심지어 논리학사가들에 따르면, 역사적으로도 이는 단지 정의의 문제였기도 하다!) 이 유혹을 따르는 대신, 위의 설명과 같은 방식으로 질료 조건이 어떤 종류의 조건문을 염두에 둘 때 그럴 듯한 ‘조건문’으로 이해될 수 있을지 명시해 준다면 학생들의 이해를 제고할 수 있을 것이며, 또한 논리 연산자가 ‘인위적’이라는 느낌에서 오는 일종의 거부감 역시 해소해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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