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브리드 언어: 세계를 언급하기

앞선 이야기

“가능하다”, “필연적이다” 등의 낱말이 그 의미론적 불투명성으로 인해 불가해하다는 것은 일찍이 콰인(W. V. O. Quine)이 주장한 바였다. 콰인과 궤를 같이 하는 분석적 전통의 선조들은 이렇게 생각했다. 우리는 양상 언어를 일차 언어로 환원할 수 없는데,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언어는 일차 언어이다. 따라서 양상적 표현은 사이비 표현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그러나 양상적 표현들은 철학에서, 나아가 과학 일반에서 추방하기 까다롭다. 때문에, 양상적 표현들의 추론적 특성이 어떠한 것인지에 관해 많은 연구가 있었다. 루이스(C. I. Lewis)와 바르칸(Ruth Barcan Marcus)이 이를 위해 큰 공로를 세웠다. 나아가, 크립키(Saul Kripke)가 완성한 의미론적 모형을 통해 논리학자들은 양상 언어의 의미론을 “가능 세계”(possible worlds)라고 일컬어지는 존재자들로 환원할 수 있었다.

루이스(D. K. Lewis, [1])는 크립키의 가능 세계를 형이상학적으로 탐구한다. 그는, 아마도 콰인의 전통을 물려받아, 양상 의미론을 일차 언어로 환원하고자 했다. 그에게 가능 세계란 단지 모델 안에 있는 도구적 존재자가 아니라, 우리의 양화 도메인 안에 있는 구체적 존재자로 간주된다.

루이스의 이론 이전에 세계들은, 비록 철학자들의 논의 안에서는 언급되기는 하지만, 대상 언어에서는 언급되지 않은 채 모델에 매립된 존재자들이었다. 루이스의 이론은 이러한 세계들을 대상 언어 차원에서 언급할 수 있게 만든 셈이다. 이는 가능 세계를 대상 언어에서 언급할 수 있게 한, 어쩌면 최초의 시도이자, 대표적인 시도였다.

그런데 루이스의 이론은 가능 개체들을 양화한다는 바로 그 점으로 인해 문제를 안게 된다. ([2]를 보라.) 콰인의 언명에 따르면, 존재한다는 것은 일차 양화사의 도메인에 포함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루이스의 이론은, 세계를 양화함에 따라, 가능 개체들이 현실의 사물과 마찬가지로 존재한다는 함축을 갖는다. 이는 의심스러운 형이상학이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세계들을 언급할 수 있는 언어를 이론화할 필요를 갖는다. 양상 표현을 포함하면서 양상 언어를 다루는, 철학자들의 언어 자체가 그러한 언어인 탓이다. 만일 이 언어에 대한 이론화가 불가능하다면, 철학자들이 대체 무엇에 관해 말하고 있는 것인지는 명시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이브리드 언어: 개요

블랙번(Patrick Blackburn)의 ‘하이브리드 언어’([3], [4])는 이를 위한 한 가지 응답으로 제안되었다. 블랙번의 아이디어는 간단하다. 어떤 세계에서만 성립하는 어떤 명제, 정확히는 0항 술어를 정의해서, 그 명제가 성립함을 주장한 것만으로 그 세계를 언급하는 것이다.

0항 술어란 무엇인가? 우리는 (해석된) 술어를 일종의 진리 함수로 이해할 수 있다. 양상 언어에서, \(n\)항 술어 \(P^n\)은 세계와 대상들로 이루어진 \(n+1\) 순서쌍을 받아 진리값을 내놓는 함수이다. 즉, 모든 술어는 다음과 같은 함수로 정의될 수가 있다:\[P^n: W\times D^n \rightarrow \{T, F\}\] 그렇다면 0항 함수는 사실 다음과 같이 정의되는 함수에 다름 아니게 될 것이다:\[P^0: W \rightarrow \{T, F\}\] 그런데 어떤 세계 상대적으로 참이거나 거짓이 되는 것으로 고려되는 것 중 하나는 다름 아니라 명제이다. 즉, 명제는 0항 함수의 일종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블랙번은 어떤 세계 상대적으로, 다른 집합이나 개체에는 상대적이지 않게, 참이거나 거짓이 되는 유형을 정의해, 이를 “명목항nominals”이라 부른다. 명목항은, 후술하는 의미론을 통해 표현될 것처럼, 어떤 단일한 세계에서, 그리고 그 세계에서만 참이거나 거짓이 되는 0항 함수이다. 이러한 명목항의 특성은 세계들을, 루이스의 방식에서처럼 일차 양화사로 양화하지 않으면서도, 양상 언어 내에서 언급할 수 있게끔 해 준다.

어떤 세계 \(\bar{w}\)에서 참이게끔 할당된 명목항을 “\(w\)”로 약호하자. 이제, 가령 \[\bar{w}\text{에서, }\varphi\text{이다.}\tag{1}\]는 다음과 같이 형식화될 수 있다 (\(@_x\)는 뒤에 오는 명제의 평가 세계를 명목항 \(x\)가 참인 세계로 전환하는 연산자이다.):\[@_{w}\varphi\tag{2}\] 또, 가령 \[\text{어떤 세계에서, }\varphi\text{이다.}\tag{3}\]는 다음과 같이 형식화될 수 있다 (여기에서 “\(\exists\)”는 일차 양화사가 아닌, 별도로 정의된 상태 양화 연산자이다):\[\exists i@_{i}\varphi\tag{4}\] 이렇게 블랙번의 의미론은, 루이스와 같은 의심스러운 존재론적 개입 없이도, 철학자들의 언어를 적절히 환원한다. (하이브리드 언어가 사용된 철학적 저술로는, 이 글에서 이미 소개한 코서렉의 연구([5]), 그리고 이 글에서 간접적으로 언급한 하원재의 연구([6])를 참조하라.)

하이브리드 언어를 이론화하기

이제 하이브리드 언어의 기본적인 구문론과 의미론을 정의하자. (편의상 여기에서는 일차 양상 언어가 아닌 명제 양상 언어만을 하이브리드 언어로 확장할 것이다.)

하이브리드 언어의 구문론

먼저, 하이브리드 언어 \(\mathcal{H}\)의 구문론은 다음으로부터 정의된다:

  • 문장 문자 \(p_i \in\sf{SENT}\)
  • 명목항 \(n_i\in\sf{NOM}\)
  • 상태 변항 \(x_i\in\sf{SVAR}\)
  • 연결사 \(\neg\), \(\supset\)
  • 양상 연산자 \(\Box\)

편의상 다음의 집합을 정의하자: \(a_i\in{\sf{ATOM}}={\sf{SENT}}\cup{\sf{NOM}}\cup{\sf{SVAR}}\). 이제 우리는 다음과 같이 \(\mathcal{H}\)의 적형식을 정의할 수 있다:\[\varphi := a_i|\neg\varphi|\varphi\supset\varphi^\prime|\Box\varphi\]

하이브리드 언어의 의미론

이제 우리는 우리의 적형식들을 위한 의미론을 정의할 것이다. (편의상 접근 가능성accessibility은 고려하지 않기로 하자.) 하이브리드 모델 \(\mathcal{M} =(W,v)\)는 다음의 이중체이다:

  • 세계 집합 \(W=\{w_1, w_2, ...\}\)
  • 평가 함수 \(v:{\sf{SENT}}\cup{\sf{NOM}} \rightarrow \mathcal{P}(W)\)

이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순서로 ‘모델에서 참true in a model’ 개념을 정의할 수 있다. 먼저 할당assignment 함수 \(g:{\sf SVAR}\rightarrow W\)를 정의하자. \(g\)의 \(x\) 변이\(x\)-variant는 다음과 같이 정의될 것이다:\[\eqalign{g^x_w(y) &= w && \text{if } x=y\\&= g(y) && \text{if } x\neq y}\] 또, 함수 \([v,g]\)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자:\[\eqalign{[v,g](a) &= g(a) && \text{if } a\in{\sf SVAR}\\&= v(a) && \text{otherwise}}\]

이제 우리는 다음과 같이, 세계 및 할당 의존적 참을 정의할 수 있다:
\[\eqalign{
&\mathcal{M}, g, w\models a_i &\iff &w\in [v,g](a_i)\\
&\mathcal{M}, g, w\models \neg\varphi &\iff &\mathcal{M}, g, w\not\models \varphi\\
&\mathcal{M}, g, w\models \varphi\supset\varphi^\prime &\iff &\mathcal{M}, g, w\models \neg\varphi \text{ or } \mathcal{M}, g, w\models \varphi^\prime\\
&\mathcal{M}, g, w\models \Box\varphi &\iff &\forall w^\prime ∈ W, \mathcal{M}, g, w^\prime\models \varphi
}\]

통례에 따라, 우리는 모든 \(g\)와 모든 \(w\)에 대해 참인 적형식을 “타당한valid” 식으로 일컬을 수 있다.

하이브리드 연산자들

위에서 정의한 하이브리드 언어는 다양한 하이브리드 연산자들을 정의하기 위한 토대를 마련한다. 우리는 도입됨 직한 연산자 중 두 경우를 아래에서 고려할 것이다. 아래의 경우들 외에도 다양한 연산자들이 정의될 수 있지만([3]을 보라) 그 중 가장 직관적이면서도, 많은 용도를 가진 연산자는 이하의 둘이다. 도입에 앞서, 편의를 위해 다음의 집합을 정의해 두자:  \(s_i\in\sf{SSYM}=\sf{NOM}\cup\sf{SVAR}\)

세계 특정 연산자 \(@\)

\(@\)는 자연 언어의 “…에서”에 상당한다. 우리는 ‘에서’가 수행하는 논리적 기능을, 특정한 점point에 대해 서술되는 문장이 참일 경우 전체 문장을 참이게 하는, 진리 함수적 기능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진리 함수는, 하이브리드 언어 프레임에서 다음과 같이 정의될 수 있다:\[\mathcal{M}, g, w\models @_{s_i}\varphi \iff \mathcal{M}, g, [v,g](s_i) \models \varphi \tag{@}\]

세계 전환 연산자 \(\downarrow\)

\(\downarrow\)는 서술되는 문장에 포함된 상태 변항의 값을 현재 평가 세계에 상당하는 것으로 전환한다. 이에 상응하는 자연어 표현을 찾기는 쉽지 않다. 다만 우리는 특정한 (가령, [6]에서 “…임”이 수행하는 것으로 간주된) 논리적 기능을 구현하기 위해 이를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다음과 같이 정의된다:\[\mathcal{M}, g, w\models \downarrow x(\varphi) \iff \mathcal{M}, g^x_w, w \models \varphi \tag{$\downarrow$}\]

참고 문헌

[1] Lewis, David K. 1968. “Couterpart Theory and Quantified Modal Logic”, The Journal of Philosophy 65.5: 113-126.

[2] 선우환. 2001. “양상 이론의 딜레마”, 철학적 분석 3: 85-111.

[3] Blackburn, Patrick, and Jerry Seligman. 1995. “Hybrid languages”, Journal of Logic, Language and Information 4.3: 251-272.

[4] Areces, Carlos, Patrick Blackburn, and Maarten Marx. 2001. “Hybrid Logics: Characterization, Interpolation and Complexity”, Journal of Symbolic Logic 66.3: 977-1010.

[5] Alexander W. Kocurek and Ethan J. Jerzak. 2021. “Counterlogicals as Counterconventionals”, Journal of Philosophical Logic 50: 673-704.

[6] 하원재. 2022. “‘라고 지식’의 논리적 구조”, 철학적 분석 48: 9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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