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별자 종속적 보편자, 또는 거친 의미에서의 트롭

몇 년 전 어느 수업의 기말 페이퍼에서 나는 다음과 같이 논증했다. 거칠고 서툴지만, 여전히 나의 관심이 같은 곳에 있음을 보여준다.


서로 다른 주어에 대해 같은 술어는 실제로 같은 현상을 지칭하는가? 즉 “a가 생각한다”와 “b가 생각한다”는 a와 b에게 실제로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주장하는가? “x이(가) ~의 색을 본다”(=S(x))라는 문장 형식을 생각해 보자. 이 문장의 주어에 <사람 a>를 대입할 때, 문장 S(a)에서 S는 인간이 ~의 색을 보는 방식으로 한정되어 a를 서술한다. 이는 어떤 고유명이 그에게 상응하는 기술의 집합과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남순예, 2000). 그럼에도 언어 표현에 필요한 개념들은 일반화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결국 S(a)와 S(b)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a와 b를 서술하는 문장이지만, 고유명 a, b에 담지 되어 있는 기술 집합이 생략되어 같은 술어 S로 표현된 것이다. 그러므로 주어와 술어는 긴밀한 의존 관계에 있다.

이에 따라 술어의 쓰임은 오류를 수반하게 된다. 특히 이미 존재하는 표현으로 새로운 현상을 표현하려고 할 때 그렇다. 이름 a에 어떤 속성(혹은 일계개념의 속성으로서 이계개념) Φ만이 내포되어 있고, 또한 그 a가 술어 R에 있어 유일하게 참이 되는 주어였다고 생각해 보자. 이 때 문장 Ra는 기존의 용례상 항상 속성 Φ를 동반하여 쓰이게 된다. 한편 “속성 Φ”는 a에게 내재되어 있는 기술구이다. 즉 a의 모든 속성을 배제하고 존재 그 자체로서의 지시체 α를 상정할 때, Ra는 Rα& Φα로 번역되어야 한다.

한편 자연언어 상에서는 순수한 지시체 α가 등장하지 않고 오직 의미를 가진 a만이 등장한다. 그렇기에 자연언어 상에서 사용된 문장 Ra는 지시체 a와 술어 R로만 구성된 문장으로 보인다. 앞선 논의에서 언급했듯, Ra는 실제로 지시체 α 가 R과 Φ을 술어로 갖는 문장으로 의미된다. 즉 언어 사용자들은 새로 등장한 문장 Rb의 술어 R에도 속성 Φ가 동일하게 존재할 수 있으리라 믿을 개연성이 있다.

따라서 동일한 것으로 간주되어 온 두 문장 각각의 술어의 관계를 재고할 필요가 있다. 술어 “……는 합리적으로 사고한다”를 생각해 보자. 이 술어는 인간에게 고유하게 쓰여왔다. 그렇다면 ‘동물은 계산하는가?’라는 질문에 어떻게 답할 수 있는가? 핵심적인 문제는 이것이다. ‘동물은 계산한다’라는 명제에 있어 술어 “……는 계산한다”는 무슨 뜻을 갖고 있는 것인가? 앞서 논의한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는 먼저 술어로부터 인간의 성질을 전부 배제해야 한다. 그 후 남게 되는 속성만을 술어가 갖는 속성으로 간주해야 술어 “……는 합리적으로 사고한다”의 의미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개념 <계산함>이 인간에게 독점적으로 적용되어 왔다는 것은 이미 그 정의에 인간성을 핵심적으로 포함한다는 것을 말하지 않는가? 만약 동물의 계산력을 상정하고, 그것이 동물에게 가져진다고 주장하려고 해 보자. 이 때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다음과 같다. 먼저 동물의 여러 행동 양태를 분석한다. 그리고 분석된 양태들 중 인간의 계산 양태와 가장 흡사한 것에 “계산함”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이다. 이 과정은 단지 이름을 붙이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개념을, 새로운 술어를 만들어 내는 과정으로 생각되어야 한다. 즉 기존의 <계산함> 개념은 <인간-계산함>으로 전치되어야 한다. 그 후 그와 같은 범주 아래 있는 <동물-계산함> 개념을 구성해 <계산함> 개념의 하위 범주에 존재하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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