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성

  • 공정성이란 그런 것이다. 정말로 비상식적인 누군가가 있다. 또한 그 사람의 상식 없음이 사람들에게 불편을 초래한다, 또는 공무에 차질을 초래한다. 그 경우, 비상식적인 그 사람을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으로 하여금 상식을 갖게 하거나, 최선으로는 비상식적인 사람의 최대한을 포괄할 법한 정책을 기획하는 것이다.
  • 이른바 “태극기 시민”이 있고 “촛불 시민”이 있다. 촛불 시민이, 어떤 사망 사고를 기린다며 천막을 세운 이들을 비난한다고 치자. 예컨대,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악한 사람들이다”라고 한다. 이러한 주장은 부조리하다. 사람의 속내란 투명하지도 않으며, 그 기림에 특정 음모가 있었음을 명확히 증명할 수 없는 한 이 주장은 지지 불가능한 탓이다. 오히려 이 주장은, 백남기와 세월호를 기린 이들의 진심을 위험한 데에로 빠트린다. 차라리 촛불 시민은, 그 사고를 함께 기리되 “그러나 그 사고는 정부의 과실에 의한 것은 아니었다”, 또는 “그 사고가 정부의 독재를 증명하거나 퇴진 이유를 제공하지 않는다”라고 하는 것이 낫다. 공정성을 유지하면서 부당한 요구를 일축한다.
  • 두 세 사람 사이에 통용되는 규칙과 오천만 명 사이에 통용되는 규칙 중 우열을 가릴 기준은 발견될 수 없다. 정치공학적 이유로 둘 중 하나를 우위에 둘 수 있을 뿐이다. 반면 그러한 공학을 거부하(자는 정치공학적 원리를 내세우)는 이들은, 그러한 우열을 나누자는 규칙을 일축하며 우열을 없애는 규칙을 우월한 것으로 둔다.
  • 규칙이 주어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규칙은 분명 주어지므로 우리가 그것을 사용한다. 다만 규칙 간 우월성이나 동등성이 주어지지 않는다. 어려움은 여기에서 생기는 것이다.
  • 왜 규칙에 대한 분석이 요구되는가? 하나의 규칙에 대해 편입되지 못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특정 규칙에 대해, 모든 사람이 그것에 접근 가능하다면 규칙의 분석은 애시당초 필요하지가 않다. 그러나 누군가에겐 그러한 분석이 있어야만 규칙에 참여할 수 있고, 따라서 그 사람을 위해 분석이 요구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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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확정자 그리고 두 종류의 현실주의

가브리엘 콘테사는 이 논문에서 양상 현실주의를 '순한맛'(softcore) 현실주의와 '매운맛'(hardcore) 현실주의로 구별한다. 전자는 스톨네이커로 대표되는 전통적 현실주의이고, 후자는 성향주의로 대표되는 새로운 현실주의이다. 저자는 후자에 대해 제기되는 문제에 대응하고 전자에 대해 새로운 문제를 제기하며 매운맛 현실주의를 옹호하고자 시도한다.

변화들: 다시 여는 말

블로그에 몇 가지 변화를 줬다. 1. 주소를 바꿨다(https://philtoday.kr). 보다 오랫동안 사용하고, 뉴스레터와 연계하기 위해 오래 전부터 계획하던 생각이다. 이에 맞추어 외부용 메일(wj@)과 뉴스레터용 메일(newsletter@) 역시 본격적으로 사용할 예정이다. 명함에 반영해야지. 2. 블로그 이름도 바꿨다. “백야”를 버리고 “오늘의 철학”으로 왔다. 사적인 공간의 이름이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