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한 줄 한 줄이 딱 오는 그런 글은 실제로 아무 의미도 갖지 않을 공산이 크다. 글의 의미는 한 줄이 아닌 전체 글로부터 오며, 더 나아가 그 글이 놓인 맥락에서 오기 때문이다. 글을 알아듣게 쓴다는 것은 따라서 멋진 말을 모자이크처럼 설치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말들의 순서를 조리있게 두는 것이며, 그 순서로 구성된 말을 또한 삶의 맥락에서 순서에 맞게 내보이는 일이다. 로티는 철학을 대화의 방식이라고 한다. 하지만 철학이 대화의 매체라고 해서 사실을 드러내길 꺼려서는 안 될 일이다. 대화의 목적은 알아듣게 하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 대화를 매개로 한다면, 먼저 철학은 알아들을 수 있는 방식으로 스스로를 드러내야 한다.

(누군가는 여기에서, ‘어떻든간 감성을 자극하는 철학적 문체도 어떤 대화를 매개할 수 있지 않겠어?’라고 물을 것이다. 그렇다면 난 이렇게 답한다. ‘그 때 자극되는 것은 감성이므로 전해지는 것은 저자의 의도가 아닌 스스로의 자기반성이다. 그런데 그는 문학이 아닌 철학을 읽기에 자신의 감상이 사실에 대한 믿음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 귀결은 꽤나 자폐적인 것이 되지 않겠는가?’)


10/16 덧)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모든 글이 조리있게 위치해있다고 가정하고 읽어야 한다. 그것이 자비의 원리이다. 자비의 원리가 없이는 어떤 의사소통도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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