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료함 외의 어려움

명료함이 아니니까 ‘일상’ 카테고리에.

  1. 공동체 S에서 일을 시작한다. 성탄절, 점심을 먹고 사람들과 인사 겸 카페에 갔다. 어쩌다보니 인스타를 발각당한다. 철학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B가 묻는다. “어느 철학자를 좋아하세요?” “아.. 러셀이라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갑분싸.
  2. 성탄 저녁에 갑작스레 한 파티에 참여한다. 랜덤으로 부여된 주제어를 갖고 시를 쓴 뒤 나누어 갖자고 J가 제안한다. 그럭저럭 쓴 시를 두고 ㅍ이 칭찬한다. “야 너 글 쓸 생각 없냐,” 나는 없다고 말한다. 끈질기게 한가지에 천착할 그런 집착을 나는 갖고 있지 않다.
  3. 장편보다 단편이, 서사보다 시가 낫다. 성서의 서사는 대개 시구 정도의 길이를 가진 작은 서사들로 분리된다. (아마도 저자가 질적으로도 수적으로도 다양한 탓에 긴 통일된 서사를 만들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성서가 좋다.
  4. 바로 그 J가 연습실을 함께 대여하자고 말한다. “좀 생각해 볼게,” J는 5분쯤 뒤 다시 나를 재촉한다. 끈질기다. 나도 그러한 끈질김은야 갖고 있다. (-이야,를 한정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은야로 대체할 수 있을까?) 그래도 영 어려운것은 J에게 답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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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확정자 그리고 두 종류의 현실주의

가브리엘 콘테사는 이 논문에서 양상 현실주의를 '순한맛'(softcore) 현실주의와 '매운맛'(hardcore) 현실주의로 구별한다. 전자는 스톨네이커로 대표되는 전통적 현실주의이고, 후자는 성향주의로 대표되는 새로운 현실주의이다. 저자는 후자에 대해 제기되는 문제에 대응하고 전자에 대해 새로운 문제를 제기하며 매운맛 현실주의를 옹호하고자 시도한다.

변화들: 다시 여는 말

블로그에 몇 가지 변화를 줬다. 1. 주소를 바꿨다(https://philtoday.kr). 보다 오랫동안 사용하고, 뉴스레터와 연계하기 위해 오래 전부터 계획하던 생각이다. 이에 맞추어 외부용 메일(wj@)과 뉴스레터용 메일(newsletter@) 역시 본격적으로 사용할 예정이다. 명함에 반영해야지. 2. 블로그 이름도 바꿨다. “백야”를 버리고 “오늘의 철학”으로 왔다. 사적인 공간의 이름이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