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합리성의 옹호자들

어떤 사람들이 말한다. 서구 합리성의 역사는 이러저러한 역사적 악행을 정당화시켰다. 따라서 합리성의 거부가 요구된다. 비합리성을 통한 정치와 예술만이 구원한다. 합리적 기획에는 선한 것이 없다.

그들의 결론을 어떻게 맞다고 할 수 있는가? 근거를 통한 옹호 가능성을 보아야만 여부를 알 수 있다. 요컨대, 그들에겐 역사적 검토가 그 근거이다. 또한 당대의 사상으로부터 합리적 논증을 해 악이 발생했음이 그 근거이다.

하지만 이러한 근거를 대는 순간 그들 역시 합리성에 의존하는 셈이 된다. 넓은 의미에서 합리성이란 납득 가능성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반면 합리성에 의존하지 않으면 그들의 주장을 검토할 수 없다.

이렇게 볼 때 그들은 해소 불가능한 딜레마에 있는 것이다. 두 길만이 가능한데, 한 길은 자기모순적이며 다른 길은 정당화될 수 없다.

차라리 합리성을 인정해 버리면 된다. 충분히 합리적으로 사고하되, 어떤 주장이 정말 불가피하게 악한 귀결을 낳는다면 그 주장을 거부하면 된다. 합리성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무런 이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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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확정자 그리고 두 종류의 현실주의

가브리엘 콘테사는 이 논문에서 양상 현실주의를 '순한맛'(softcore) 현실주의와 '매운맛'(hardcore) 현실주의로 구별한다. 전자는 스톨네이커로 대표되는 전통적 현실주의이고, 후자는 성향주의로 대표되는 새로운 현실주의이다. 저자는 후자에 대해 제기되는 문제에 대응하고 전자에 대해 새로운 문제를 제기하며 매운맛 현실주의를 옹호하고자 시도한다.

변화들: 다시 여는 말

블로그에 몇 가지 변화를 줬다. 1. 주소를 바꿨다(https://philtoday.kr). 보다 오랫동안 사용하고, 뉴스레터와 연계하기 위해 오래 전부터 계획하던 생각이다. 이에 맞추어 외부용 메일(wj@)과 뉴스레터용 메일(newsletter@) 역시 본격적으로 사용할 예정이다. 명함에 반영해야지. 2. 블로그 이름도 바꿨다. “백야”를 버리고 “오늘의 철학”으로 왔다. 사적인 공간의 이름이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