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종속적 철학은 가능한가?

어떠한 사상에 따르는 철학, 예컨대 여성주의적 철학이나 기독교 신학적 철학, 맑스주의적 철학은 가능한가? 그것들 각각은 때로 줄여서, 여성철학/기독교철학/맑스철학으로 불리기도 한다. 여하간 그러한 것은 가능한가?

철학이 갖는 학문적 지위는 메타학문으로서의 그것이다. 여러 눈들 사이에서 다른 눈 모두를 보는 감시자의 역할이다. 따라서 철학은 그 자체로, 모든 학문들의 논의 영역domain을 스스로의 논의 영역으로 포함한다. 그렇지 않다면 철학이 다른 학문을 특정 영역, 예컨대 개념과 논리의 영역에 할당하는range over 것이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일상 언어는 모든 학문의 논의 영역을 포괄하며, 그래서 실존철학과 일상언어학파의 분석은 적절한 철학적 분석으로 존립한다.

그런데 OO주의철학의 지위는 어떠한가? 일견 보기에 그러한 철학이 철학의 일종으로 정당화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여성주의에 관한 철학적 분석, 기독교 신앙에 대한 철학적 분석, 맑스주의에 관한 철학적 분석 등이 가능하다면 적어도 철학의 영역보다 그각각이 같거나 작고, 세 영역이 완전히 중첩되지 않으므로 셋 중 어떤 영역도 철학의 영역과 크기가 같지 않다. 그런데 그러한 철학적 분석 각각이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각 영역에 종속된 어떤 학문도 철학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

만일 가능하다면, 그것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만 그렇다. 여성주의, 기독교 신학, 맑스주의의 시각이나 방법론만을 유지하되 그것을 통해 모든 것을 분석한다. 그런데 이미 그 순간, 시각이나 방법론은 기존의 사상으로부터 독립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각 사상은 자신의 사상을 대변할 만한 다른 원초적 입장을 빌려와 자신의 분석을 수행한다. 그 입장이 무엇인지가 문제되지는 않는다. 관념론적 신학과 현상론적 신학, 경험론적 여성주의와 이성론적 여성주의가 모두 가능하다. 따라서 각 사상을 그것으로 특정짓는 것은 그것의 토대가 되는 입장의 직조물이라기엔 그 사상의 대상 영역인 듯하다. 그런데 이 영역이 철학 일반을 포괄하는 데에로 나아간다면, 그러한 특정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OO주의 철학’이라는 말은 부조리해보인다. 기껏해야 젠더에 대한 철학적 분석, 종교 현상에 대한 철학적 분석, 경제적 모순에 대한 철학적 분석이 특정 철학적 입장의 한 갈래로만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고찰할 때, 한 사상에 대한 철학적 연구가들을 연대시킬 끈이란 발견될 수가 없다. 철학적 분석의 장에서, 그 연구가들은 서로 경합한다.

이러한 경합 가능한 철학의 각 갈래를 일컫지 않고서는, ‘OO주의 철학’은 기껏해야 “특정 철학적 분석법을 적용한 OO주의의 입장”을 의미하거나 “OO주의의 사상”으로 간단히 말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입장이나 사상은 한 사람의 기초적 신념이지, 논증하고 논박할 만한 참과 거짓의 주제에 속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에 학문으로서 철학의 지위를 부여하는 것은 아니러니하다. 정치적 발언들이 학문적 담화의 지위를 갖는다는 주장은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축하기로, 어떤 사상에 종속된 철학이란 존재할 수 없다. 각각의 철학적 입장들이 있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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