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적 철학자와 실천적 철학

러셀은 형식논리학과 언어철학, 인식론 등 체계에 관한 작업을 주로 했다. 한편 그는 인간주의자로서 다수의 에세이를 저술했고 정치적 활동에 뛰어들기도 했다. 두 활동은 내용상 독립되어 있었다. 그의 철학적 작업이 그가 세계를 보는 데에 영향을 주었을지도 모르지만, 철학적 작업이라는 것의 특성상 두 활동은 큰 상관관계가 없었을 것이다.

철학은 반드시 실천적 영역에 기여해야 하는가? 어떤 이들에게는 그러한 강박이 발견된다. 그러나 러셀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철학적 논증을 통한 지지가 아니고서라도 철학자는 실천적으로 세계에 기여할 수 있다. 굳이 인본주의를 이름의 의미론적 특성이나 진리 대응설, 보편자 실재론 등으로 옹호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옹호하지 않는 것이 낫다. 철학은 참됨을 주장하고 실천은 좋음을 주장한다. 첫째로, 참된 것이 좋음을 담보한다는 것이 의심스럽기에 철학은 실천을 옹호할 수 없다. 둘째로, 참됨은 정적이기에 철학의 주장이 흔들린다면 실천의 의의가 통째로 공격당한다. 러셀은 이런 이유로 스피노자의 <윤리학>에 유감을 표했다.

좋은 철학을 하는 것과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다르다. 전자는 철학적 참에 기여하는 것이고 후자는 옳은 행위에 참여하는 것이다. 물론 철학이 발견한 진리에 위배되는 행위는 옳은 행위가 될 수 없다. 그러나 무엇이 옳은 행위냐의 기초에는 철학이 아닌 결단이 있다. 그 결단을 철학의 방식으로 분석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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