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 있게 쓰기의 어려움

자꾸 어렵다. 뭐가 어려운진 몰라도 확실히 뭔가 어렵다 ㅇㅅㅇ.. 일단 오늘의 어려움은 양심 있게 쓰고 말하는 법이다. 애기때부터 대학 와서까지 줄기차게 들은 ‘글쓰기 교양’의 많은 부분은 <나를 드러내지 말 것>이었다. ‘나는~생각한다’ 꼴의 글을 쓴다면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말해야 하나? 앞뒤를 자르고 “~”만 써라. 그러면 사실을 진술하는 듯 보여서 글이 멋있다.

머리가 좀 커서 생각해보니 완전 영혼 요단강 건너신 말씀이다. 그러면 순전히 내 생각인 것을 어떻게 말해야 하나. 나는 완전히 주관적인 사실 “~”만을 말하려고 하는데, 그것을 그저 ‘~’로만 전달한다면 사기치는 것 아닌가. 예컨대, 내가 보아하니 저 기둥이 예쁘길래 ‘기둥이 아름답다’라고 쓴다면 그것이 뭐 의미 있는 진술일 수나 있을까. 나는 진리가 실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진리는 실재한다’라고 선언했다. 반실재론자가 들으면 콧방귀 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것은 생각한다고 자르고 시작해야 의미 있는 진술, 토론을 구성하는 진술이 된다. 내가 A라고 생각해서 A-믿음을 표현하는 것이라면 “나는 A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해야 한다. A가 하나의 사실로 인정되어 있고, 그 사실을 진술하려 한다면 “A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 내가 속한 학파 또는 임의의 학파가 A라고 인준했다면 “I학파에 따르면 A이다”라고 말하면 된다.

사람들이 양심 없는 글을 쓰는 것이 나를 지우라고 강요하기 때문인 듯하다. 웅변에서야 그럴 수 있겠지. 거기엔 싸이테이션 달 공간이 없으니까. 그런데 글에서까지 그래서 되겠나. 나를 지우니까 다른 출처 있는 믿음들의 출처도 지우려 든다. 그러다보니 글이 선언의 나열로 구성된다.

선언뿐인 글은 별 가치가 없다. 내가 A라고 생각한다고 말하고, 왜 A인지 밝히고, 결론에서 A라고 선언하는 것이 순리이다. 근데 이유를 밝히는 것은 정당화의 작업이다. 정당화는 지극히 공동체적인 행위이다. 그래서 출처가 필요하다. 또 그 출처라는 것도 잘 정당화된 사실을 가진 출처여야 한다. 선언 뿐인 글을 싸이트 해서 정당화하면 그것 역시 그냥 선언 뿐인 글이다.

그런데 너무 그 글을 참조하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 하지? 그 때는 그 참조한 출처의 주장을 정당화하면 된다. 예컨대, 니체의 철학을 전거로 하여 뭔가 말하고 싶다면 다시 니체의 어떤 저술을 정당화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된다면 “니체의 철학”이라는 것은 사실상 하나의 주장만 남은 별 쓸모 없는 것이 된다. 심지어 그 주장은 불필요하다. 잘 짜여진 정당화 기제는 분명한 주장을 결론으로 내는 함수이기 때문이다.

현대 D철학자들은 그런 참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 사람들의 논문은 대부분이 “출처의 정당화”에 할애된다. 반면 B철학자들은 그런 참조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대부분이 “내 주장의 정당화”에 할애된다. B철학의 방식이 항상 좋은 것은 아니다. 정말로 과거에 묵혀 있던 보물같은 주장이 튀어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B철학자들은 바보가 아니어서, 과거의 철학 저술도 자주 읽는다.

도식화 하자면 이렇다.

(백야에 처음 올린 사진인 거 실화냐..)

생각건대, 이렇게 써야 양심 있게 글을 쓸 수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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