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에 있어 철학의 역할

누군가가 묻는다. 왜 대륙철학과 달리 분석철학의 작업은 예술적 영향력이 크지 않은가? 분석철학의 작업에 영향받은 예술가는 왜, 니체에게 영향받은 수많은 이들과 달리, 없는가?

나는 이 질문이 애초에 잘못 놓였다고 생각한다. 애초에 어떤 철학에 있어서도 그것이 예술에 있어 갖는 역할은 없다. 다만 몇몇 철학자들의 저작은, 그것이 채택하는 표현이 유도하는 상상력으로 인해, 몇몇 예술 작품을 만들게끔 했을 뿐이다.

다시 누군가 말한다. 최근의 예술계의 동향은 그렇지 않다. 챠머스의 작업으로부터도 작품이 만들어진다. 과학 역시 시각 예술에 기여한다.

나는 이 반론이 멍청하다고 생각한다. 이 때에도 예술 제조의 역할은 오로지 예술가에게 있다. 철학적 주장이나 과학적 사실은 예술가의 창조적 이해가 아니고서는 작품과 무관하다.

심지어 그의 반론을 따를 때, 모든 분야의 모든 작업이 예술에 역할을 갖는다고 보아야 한다. 이것이 애초에 ‘예술에 있어서 그것의 역할이 무엇이냐’라고 물을 때 답해지면 좋은 것인가? 그것은 너무나 사소하다. 언제나 ‘나름의 역할이 있다’라고 대답되어야 하는 질문인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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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확정자 그리고 두 종류의 현실주의

가브리엘 콘테사는 이 논문에서 양상 현실주의를 '순한맛'(softcore) 현실주의와 '매운맛'(hardcore) 현실주의로 구별한다. 전자는 스톨네이커로 대표되는 전통적 현실주의이고, 후자는 성향주의로 대표되는 새로운 현실주의이다. 저자는 후자에 대해 제기되는 문제에 대응하고 전자에 대해 새로운 문제를 제기하며 매운맛 현실주의를 옹호하고자 시도한다.

변화들: 다시 여는 말

블로그에 몇 가지 변화를 줬다. 1. 주소를 바꿨다(https://philtoday.kr). 보다 오랫동안 사용하고, 뉴스레터와 연계하기 위해 오래 전부터 계획하던 생각이다. 이에 맞추어 외부용 메일(wj@)과 뉴스레터용 메일(newsletter@) 역시 본격적으로 사용할 예정이다. 명함에 반영해야지. 2. 블로그 이름도 바꿨다. “백야”를 버리고 “오늘의 철학”으로 왔다. 사적인 공간의 이름이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