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례와 성만찬

사실 성만찬례나 차례나, 친구끼리 오랜만에 만나서 추억팔이 하며 술 한 잔 하는 거나 그 요지는 크게 다르지 않다. 성만찬에 주의 영이 임재한다고 믿고나 친구와 만나 때로 술잔을 기울인다면 “이런 망할 귀신문화 어서 사라져야”라고 말할 것까지는 없다. 차례가 문제가 된다면 이를 준비하는 데에 관한 수고가 여성에게 편중된다는 점을 것이다. 차례에 사탄이 머문다면 바로 이 수고에 머문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그런데 이것이 어디 차례만의 문제인가 싶다. 차례를 안 지내도 명절상이나 손님상은 그 집의 여자가 단독으로 준비하고 남자는 소파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포도주와 떡은 여성도들이 준비하고, 남성으로 구성된 신도 지도자 내지 사역자들이 성례를 집전하는 것도 고쳐져야 할 교회의 문제 중 하나이다. 차례에 사탄이 임한다면 차례 아닌 데에서도 여전히 임한다. 까마귀는 아브람의 상과 파라오의 상을 가리지 않고 앉아서 제사상을 취하려 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내 제사상의 까마귀를 쫓는 데에 있지, 그것이 내 제물을 먹어치우는 동안 다른 이의 상을 두고 왈가왈부하는 것은 영 좋지 못한 일이다.


라는 메모를 남긴 뒤에 보낸 나의 추석은 썩 즐겁지는 않았다. 나는 얼마나 까마귀를 쫓는 데에 힘썼던가? 오히려 까마귀가 앉는 데에 힘을 보탠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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