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적 OO과 OO철학

종교철학을 처음 시작할 때 교수들은 이런 말로 나를 괴롭혔다: “종교철학에는 두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철학적 신학이고, 다른 하나는 종교철학입니다.” 처음 이 말을 들을 땐 대체 뭔 소리를 하는 것일까 하면서 짜증을 부렸는데, 이제야 좀 이해가 간다.

비평철학을 공부하자거나 언어철학을 공부하자고 하면 어떤 사람들은 이런 것을 떠올린다. 마르크스나 푸코의 틀을 갖고 비평하는 법을 배우기. 또는 하이데거나 데리다의 틀을 갖고 언어를 이해하기. 엄연히 말해 이것은 비평철학이나 언어철학과는 다르다. 전자는 철학적 비평을 공부하는 것으로, 후자는 철학적으로 언어를 이해하는 것으로 여겨져야 한다. 말하자면 철학적 비평과 철학적 언어학이다. (후자는 그렐링의 저서 <철학적 논리학>의 제목과는 다른 의미이다.)

OO철학의 특징은 OO을 철학적 방식으로 분석한다는 데에 있다. 종교철학은 철학적 방식으로 종교 일반을 분석한다. 언어철학은 철학적 방식으로 언어 일반을 분석한다. 비평철학은, 철학적 방식으로 비평 일반을 분석한다.

철학적 방식으로 어떤 분야 일반을 분석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어떤 분야에 대한 메타질문을 한다는 것이다. 무엇이 메타질문인가? 어떤 방법론의 정당화나, 어떤 분야에서 사용되는 용어에 대한 의미, 어떤 연구 대상에 대한 통속적 이해의 적절성 등을 분석하고 평가하는 질문이 메타질문이다.

이것이 철학적 OO과 어떻게 다른가? 철학적 OO은 그 학제를 철학적 방식으로 해명하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일반적으로 앞선 철학자의 을 갖고 비평하는 방식이 사용된다. 그런 방식이 아니더라도, 철학 연구가들이 사용하는 방법론 일반을 갖고 그 학제를 수행한다. OO철학은 그러한 틀을 갖고 비평하지 않는다. 철학의 방식 자체가 어떠한 틀이 된다.

더 나아가 통속적으로 철학적 OO이라 하는 것은 철학과는 전혀 다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아무 틀 없이 철학적 방식으로, 즉 의미와 기호 등을 갖고 작품을 비평하는 것도 철학적 비평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철학적 비평은 비트겐슈타인, 마르크스, 푸코, 들뢰즈, 라깡의 철학 틀을 비평에 적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OO철학도 이런 너절한 것으로 무너지곤 한다. 그래도 OO철학은 OO의 개념들에 대한 메타분석으로 수행된다는 점에서, 여전히 건재하다.

어떻게 보면 말장난이다. 철학적 OO학과 OO철학은 때로 상호교류되거나, 공통된 주제를 연구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무언가 차이점을 찾을 수는 있다. 예컨대 “하느님이란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종교철학과 철학적 신학의 공통 질문이다. 하지만 그것을 풀어내는 방식이 종교철학과 철학적 신학에서 전혀 다르다. 종교철학자는 다양한 종교에서의 신 개념을 살펴보며, 신학에서 사용되는 신 개념이란 이러이러한 의미(또는, 가족유사성)를 갖는다고 말할 것이다. 철학적으로 논증하는 신학자는 하느님 개념에 대한 존재론적 논증을 하려 할 것이다. 포이에르바흐는 종교철학을 한 것이고, 안셀름은 신학을 한 것이다.

신학자는 안셀름을 좋아하지만, 포이에르바흐를 싫어할 수 있다. 비평가는 푸코를 좋아하지만, 비어즐리를 싫어할 수 있다. 언어학자는 라깡을 좋아하지만, 러셀을 싫어할 수 있다. 물론 어떤 경우에는 후자에 흥미를 느낄 수 있겠으나 그것은 과학자가 쿤에게 호감을 느끼는 것과 같은 호감이지, 과학자가 동료 과학자에게 느끼는 호감과는 다르다. 철학책을 좋아하는 사람과 철학 물음을 좋아하는 사람은 이 지점에서 보통 갈리는 것 같다. 과학자는 과학철학자가 별 것도 아닌 질문에 집요하다고 생각할 것이고, 과학철학자는 과학자가 충분히 조심스럽지 않다고 생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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