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1. 요즘 자꾸 되새기게 된다. 나는 왜 그것을 했는지, 왜 나는 이런지, 왜 다른 이들은 달랐는지 … 등.
  2. 왜 나는 철학을 하는 것일까, 누가 철학을 이어가려 할까, 어떤 사람에게 철학은 재미있을까, … 이런 질문은 동료 모 씨에게서 발견한 것이었다.
  3. 철학책이 재미있느냐, 이것 자체는 철학을 계속 할 이유가 되지는 않는 것 같다. 철학사를 싫어하는 철학자들은 철학책을 더럽게 지루해하지만, 철학을 계속 한다. 철학책이 재미있어서 대학원에 들어간 갔지만 논문을 못 쓰고 학업을 그만두는 경우들을 보았다. 그렇다면 철학책 읽기의 즐거움은 철학자의 요건이 아니다. 사실 철학책 읽기를 즐거워해야 하는 것은 철학자 외의 사람들이다. 과학자, 심리학자, 언어학자, 비평가, 예술가, … 이런 사람들이 철학책 읽기를 즐거워할 때 도움을 받는다. 자신의 이론 전개 도구를 철학으로부터 정당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4. 철학자는 때로 소비자이긴 하지만 대체로 철학의 생산자이다. (퍼트남에게 과학자가 그렇듯.) 그러면 철학이 무엇이냐는 것이 문제가 된다. 내가 배우기로, 철학은 메타학문 일반을 가리킨다. (그래서 메타철학이 철학적 작업이 된다. 그러면 철학으로서 메타철학은 그 메타철학이 규정하는 철학과 동질적인가? 이제 러셀이 머리를 밀 차례다.) 그렇다면 철학은 메타적 질문을 하는 이들이 하면 될 일이다. (칸트는 이것을 “초월론적”이라고 말한 것인가?)
  5. 그래서 나는 철학이 그 자체로 실천적 의의를 가질 필요는 없다는 생각을 했다. 철학자들은 그들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을 분석하고, 그 분석으로 하여금 그들이 자기반성을 하게 도와주면 되는 것 같다. 나는 그런 분석을 즐긴다. 그래서 어쨌건 철학을 계속 한다.
  6. 철학하는 사람은 먼저 사람다운 사람이 되어야만 하는 것일까?
  7. 오늘 여성신학에 관한 강의를 들었다. 강연자에게 여성신학의 실천적 충돌에 관해 물었다. 강연자는 여성신학은 메타담론이고, 결국 현실의 개인들의 행동을 설명해서 자기반성에 이르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식으로 답했다. 내가 생각하는 신학과 그가 생각하는 신학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 나름의 위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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