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

  • 여러가지 방식의 치유가 있다. 어떤 문화는 치유를 위해 물리적 방식을 동원하고, 어떤 문화는 상징을, 어떤 문화는 언어를 동원한다.
  • 이원론적 종교가 하나의 치유 방식으로 작동한다. 어떻게? 탄원자의 특정한 결여에 대해, 그 결여를 악신의 책임에 돌린다. 문제는 여전히 남지만 그 탓은 저 멀리 있는 악신에게 있다.
  • 상담이 하나의 치유 방식으로 작동한다. 어떻게? 상담에서는 언어가 매개가 되긴 하지만 그 언어는 일상적인 것과 사뭇 달라보인다. 대화에 포함되었던 명제가 아니라, 그 문장들을 통한 내담자의 감상이 치유로 이끈다.
  • 귀신의 이름을 호명하여 치유를 이끌어 낸다. 어떻게? 귀신 들렸다고 사제가 간주하는 이의 증상에 대해, 그것에 대응하는 귀신을 차례로 부른다. 어떤 과정에서인지 대상자는 “치유”를 입는다.
  • 물리적인 치유는? 내가 바로 그러한 치유를 근본적인 것으로 여기는 문화권 안에 있으므로 나는 이에 대해 많은 말을 할 방법이 없다.
  • 치유의 방식 자체가 다양하다.
  • 어떻게 생각하면, 애초에 내가 다른 결과를 원했더라면 다르게 행동했을 일이었다. 내가 이대로 행동했던 것은 딱 이런 결과라도 별로 피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난 여전히 빈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 그런 것이 있다.)
  • 누군가의 자연적 반응이 애초에 별로 치유에 도움되지 않아 보인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를 멈춰세워야 하나? 하지만 적어도 그것은 내가 할 일은 아니다. 잘못의 인정을 품는 것 외에 내가 할 일은 없고, 딱 그정도만큼의 마음만이 생기는 것이기도 하다.
  • 모든 사람이 치유사가 될 의무를 갖는 것도 아니며, 더욱이 어떤 상황에 관련되어 있는 사람은 그 상황의 문제를 치유할 수 없는 법이다.

(어쩌면 이 메모 전체가 나의 치유를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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