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신학

퀴어신학은 해석학에서 시작한다. 성서비평을 하든 기존 조직신학 개념을 재해석하든 전복(=_=)하든 한 뒤에야 퀴어적인 조직신학이 가능하다. 오늘 모 강연에서의 강사는 꼭 퀴어신학이 성서비평-우선성을 갖고 있지는 않다고 주장했지만, 내가 보기엔 어떻든 퀴어신학은 텍스트비평에 우선성을 준다. 그런데 사실 당연하다. 교조적인 주장이 아닌 이상 예술 행위 내지 창조 행위가 없다면 조직신학적 방법은 불가능하다. 원래 집을 부수거나 빈 땅에 자재부터 챙기고, 설계도를 그려야 그 다음부터 집을 짓는 법이다. 퀴어신학만 그렇겠냐.

 

(그래도 푸코는 싫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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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확정자 그리고 두 종류의 현실주의

가브리엘 콘테사는 이 논문에서 양상 현실주의를 '순한맛'(softcore) 현실주의와 '매운맛'(hardcore) 현실주의로 구별한다. 전자는 스톨네이커로 대표되는 전통적 현실주의이고, 후자는 성향주의로 대표되는 새로운 현실주의이다. 저자는 후자에 대해 제기되는 문제에 대응하고 전자에 대해 새로운 문제를 제기하며 매운맛 현실주의를 옹호하고자 시도한다.

변화들: 다시 여는 말

블로그에 몇 가지 변화를 줬다. 1. 주소를 바꿨다(https://philtoday.kr). 보다 오랫동안 사용하고, 뉴스레터와 연계하기 위해 오래 전부터 계획하던 생각이다. 이에 맞추어 외부용 메일(wj@)과 뉴스레터용 메일(newsletter@) 역시 본격적으로 사용할 예정이다. 명함에 반영해야지. 2. 블로그 이름도 바꿨다. “백야”를 버리고 “오늘의 철학”으로 왔다. 사적인 공간의 이름이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