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사된 세계로서 현실 세계

<현대윤리학>(강철) 기말 발표를 위해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다. 다음과 같은 입장이 어디에 속하는지 잘 모르겠다. 말하자면 포이어바흐스러운 해석인데, 메이크빌리브 이론 등과는 좀 다르다. 일단은 블로그에 남겨 두어야지..


나의 아이디어는 이렇게 시작한다. 우리가 현실 세계로 생각하는, 특정한 법칙이 작용하는 공간은 우리의 경험 세계와는 구분되어야만 한다. 경험 세계에서는 경험적 사실 외에 발견될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실 세계”의 개념이 정정될 필요가 있다. 양상의 개념을 다룰 때, 우리는 ‘현실 세계’가 특정한 지표어로서 어떠한 가능세계를 지시한다고 생각하곤 한다. 예컨대 우리는 현실 세계는 수많은 가능 세계 중 하나일 뿐이며, 현실 세계가 다른 것과 구분되는 것은 오로지 우리가 그 세계에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지표적 특성에 있다는 루이스의 주장을 떠올릴 수 있다. 마찬가지로 크립키 역시 우리 세계 외의 다른 가능 세계들은 추상적 세계일 뿐이라고 해석한다. 하지만 우리가 으레 현실 세계의 사실이라고 여기는 물리 법칙, 규약, 집합 등은 경험적 사실로서 발견되지 않는다. 단지 어떤 사실들로부터 그러한 사실이 있음을 추론할 뿐이다.

나는 일차적으로 경험적 사실들로만 구성된 세계와, 그 사실로부터 추론된 법칙이 추가된 세계를 구분할 것을 제안한다. 이 중 우리와 지표적으로 관계맺는 세계는 전자이지, 후자가 아니다. t0시점에서 관찰된 사실이 {p, q} 뿐인 경우, 그리고 그 사실들이 배타적인 두 정합적 법칙 L, M으로 설명되는 경우를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지표적 세계는 무엇인가? {p, q, L, M}이라고 할 수는 없다. L과 M이 모두 참이라면 우리 세계에 모순된 사실이 있음을 인정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한편 우리는 L과 M 중 어느 하나의 법칙이 분명히 맞음을 증명할 수 없다. 그것들은 관찰된 사실들을 충분히 설명하면서 체계 내적으로 정합적인 경쟁 이론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p, q, L}과 {p, q, M}이 후보로 남는다. 그러나 둘 중 어느 세계에 대해서도 그 세계가 우리와 지표적으로 관계한다는 주장이 정당화될 수 없다.

따라서 우리가 바로 이 세계의 사실로 정당화할 수 있는 가장 큰 집합은 {p, q}이다. 물론 t1시점에서 모종의 사유로 M을 배제하는 사건 r이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라도 L은 세계의 사실로 인정될 수 없다. 우선은 {p, q}의 세계에서 M이 그랬듯 여전히 L의 경쟁 이론 N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t2에 N을 배제하는 사건 s가 일어남에 따라 L은 조금 더 높은 개연성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이 과정은 순전히 귀납적이다. 귀납 추리는 어떤 가설의 개연성을 설명하지만 그 가설을 증명하지 못한다. 하나의 가설이 세계의 사실로서 인정되려면 그 가설을 연역적 귀결로 갖는 사실이 발견되거나 그 가설 자체가 참으로 발견되어야 할 텐데, 귀납의 과정은 그러한 발견을 보장하지 못한다. 따라서 두번째 이유로, L은 다른 법칙이 소거됨을 근거로 하여 이 세계의 사실로 정당화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현실 세계”를 말할 때 최소한 어떤 법칙이 있는 세계를 가정한다. 현실 세계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물리적, 윤리적, 논리적 법칙이 작동하고 있다. 이렇게 생각되는 현실세계는 오로지 어떤 사태들만이 등장하는, 우리의 경험 대상으로서 이 세계와는 구분되는 듯 보인다. 이 세계가 오로지 p나 q와 같은 원자적인 사실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보는 것은 부조리한 시각이다. 따라서 나는 경험되는 세계와 ‘현실 세계’로 지시되는 바로 그 세계가 일종의 대응 관계를 이루고 있다고 볼 것을 제안한다. 개략적인 아이디어는 이렇다: 1) 현실 세계는 하나의 가능 세계이다; 2) 현실 세계에는 법칙이 사실로서 실재한다; 3) 법칙은 사실로서 관찰될 수 없다; 4) 경험되는 세계와 현실 세계는 구분된다; 5) 우리는 관찰 가능한 사실과 그 외의 사항을 포함한 특정한 가능 세계로 “현실 세계”를 대응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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