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무용성

철학은 필요 없는 지식만을 생산한다. 더 나아가 철학은 필요 없는 지식을 생산할 때에만 올바른 길을 걷는 것 같다. 역설적이게도 정말 그렇다. 어떤 사람이 제안한 철학적 입장이 과하게 과격하다면 그건 철학적 입장으로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 철학은 우리 삶에 대한 올바른 설명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철학적 입장이 우리 삶을 전혀 설명하지 못한다면 그건 철학이라고 하기엔 결격사유가 있다.

철학 논문에서 사용하는 표현이 일상적이냐 아니냐가 크게 중요하지는 않다. 중요한 것은 어떤 표현을 쓰든 간에, 우리의 삶을 잘 설명할 수 있냐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삶을 잘 설명한다면 그건 별로 쓸모 없는 이야기일 공산이 크다. “사람들이 ~하는 것은 ~라는 이유 때문이다”라는 설명이 있다면, 그것은 사람들이 이렇게 저렇게 행동하는 데에 별로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이고/끼쳐서는 안되기 때문에 그렇다.

다만 사람들이 자신의 행동의 이유를 깨닫게 하는, 반성적 연구로서 철학은 의미를 가질지도 모른다. 독립된 일상인들의 입장, 예컨대 A의 이유가 B라는 존재론적 태도라고 할 때, 일상인들이 -B를 함의하는 C를 기초적 입장으로 삼는다면 그들은 더이상 A를 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런데 콰인의 주장처럼 일상인들은 A의 이유가 B라는 철학의 주장 자체를 ‘그렇지 않다!’라고 부정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철학은 다시 별 쓸모가 없어진다.

세상을 잘 분석하든 잘못 분석하든 철학은 언제나 좀 깍두기같다. 철학에서 거짓된 아우라가 제거된 오늘날에는 더욱 그렇다. 왜  아직도 철학이 있는가? 잘 모르겠다. 신학 안 좋아하는 기독교인들에게 왜 신학이 있냐고 묻는다면 비슷한 이유에서 모르겠다고 답할 것이다. 그래도 누군가는 철학적 질문을 생산하고 거기에 답한다. 우연히 비슷한 질문을 누군가가 하면 나름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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