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밀고 나가기"

단현이 종종 쓰는 표현으로 “끝까지 밀고 가지 못했다”라는 것이 있다. 아마도 프랑스 철학하는 이들에게서 가져온 듯. 내가 쓰는 말은 아니긴 하지만, 딱 이 표현에 맞는 일들이 종종 보여서 생각이 났다.

대표적인 유형은 “구원”이란 무엇이냐는 문제에 관련된다. 모든 신학하는/한 이들이 안다. 구원은 내세로 쓩 떠나는 그 무엇이 아니다. 구원은 도래하는 것이며, 억눌린 이들의 해방이다. 내세로 떠나는, 현실도피적인 것이 구원이라면 그런 구원을 행하는 신은 무책임하다. 현실을 지지한다. 악의 근원이다.

하지만 반면, 가장 큰 악의 경험인 죽음에 관해 그것의 구원은 내세로의 이동이라는 구원관이 존재한다. 억눌린 이의 구원이 해방이듯 죽음의 반대급부는 영생이므로, 그것은 일종의 구원이다. 그런데 그러한 영생은 결국 현실도피적 구원관을 지지한다. 구원은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게 문제다.

그래서 시종 붙어다니는 표현이 이 둘이다. “죽어서 천국에 가는 것이 구원이기는 하지만”, “구원은 저 세상에 떠다니는 무엇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보통 후자를 말하면서 그 말이 위험해지지 않기 위해 전자를 말한다.

신학을 끝까지 밀고 가지 못한 사례이다. 후자만 말하더라도 충분한데, 전자를 함께 말함으로써 주장을 약화한 셈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은 불가피하다. 전자 또한 어떤 의미에서 구원의 일종이며, 또 사후세계에 관한 신념은 종교의 큰 영역을 차지한다.

불가피하다. 그런데 끝까지 밀고 가야 한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런데 불가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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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확정자 그리고 두 종류의 현실주의

가브리엘 콘테사는 이 논문에서 양상 현실주의를 '순한맛'(softcore) 현실주의와 '매운맛'(hardcore) 현실주의로 구별한다. 전자는 스톨네이커로 대표되는 전통적 현실주의이고, 후자는 성향주의로 대표되는 새로운 현실주의이다. 저자는 후자에 대해 제기되는 문제에 대응하고 전자에 대해 새로운 문제를 제기하며 매운맛 현실주의를 옹호하고자 시도한다.

변화들: 다시 여는 말

블로그에 몇 가지 변화를 줬다. 1. 주소를 바꿨다(https://philtoday.kr). 보다 오랫동안 사용하고, 뉴스레터와 연계하기 위해 오래 전부터 계획하던 생각이다. 이에 맞추어 외부용 메일(wj@)과 뉴스레터용 메일(newsletter@) 역시 본격적으로 사용할 예정이다. 명함에 반영해야지. 2. 블로그 이름도 바꿨다. “백야”를 버리고 “오늘의 철학”으로 왔다. 사적인 공간의 이름이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