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밀고 나가기"

단현이 종종 쓰는 표현으로 “끝까지 밀고 가지 못했다”라는 것이 있다. 아마도 프랑스 철학하는 이들에게서 가져온 듯. 내가 쓰는 말은 아니긴 하지만, 딱 이 표현에 맞는 일들이 종종 보여서 생각이 났다.

대표적인 유형은 “구원”이란 무엇이냐는 문제에 관련된다. 모든 신학하는/한 이들이 안다. 구원은 내세로 쓩 떠나는 그 무엇이 아니다. 구원은 도래하는 것이며, 억눌린 이들의 해방이다. 내세로 떠나는, 현실도피적인 것이 구원이라면 그런 구원을 행하는 신은 무책임하다. 현실을 지지한다. 악의 근원이다.

하지만 반면, 가장 큰 악의 경험인 죽음에 관해 그것의 구원은 내세로의 이동이라는 구원관이 존재한다. 억눌린 이의 구원이 해방이듯 죽음의 반대급부는 영생이므로, 그것은 일종의 구원이다. 그런데 그러한 영생은 결국 현실도피적 구원관을 지지한다. 구원은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게 문제다.

그래서 시종 붙어다니는 표현이 이 둘이다. “죽어서 천국에 가는 것이 구원이기는 하지만”, “구원은 저 세상에 떠다니는 무엇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보통 후자를 말하면서 그 말이 위험해지지 않기 위해 전자를 말한다.

신학을 끝까지 밀고 가지 못한 사례이다. 후자만 말하더라도 충분한데, 전자를 함께 말함으로써 주장을 약화한 셈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은 불가피하다. 전자 또한 어떤 의미에서 구원의 일종이며, 또 사후세계에 관한 신념은 종교의 큰 영역을 차지한다.

불가피하다. 그런데 끝까지 밀고 가야 한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런데 불가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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