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o-Carnapian'

신카르납주의는 오늘날 영미권 철학계에서 아주 빈번히 등장하는 분류이다. 이들은 존재론을 보다 연질의soft, 가벼운lightweight 것으로 간주한다. 이들은 양화사나 개념에 있어 가소성 내지 상대성이 원리적으로 보장된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진지한 문제란 존재론 내적internal 문제일 뿐이며, 존재론 외적external 문제는 상당히 사소한 것 내지 어쩌면 사이비 문제에 불과할 것임에 동의한다. 그리고 나 또한 이들의 방향성에 찬동한다. 따라서 나도 신카르납주의자일 것이다.

그런데 국내 문헌에서 이 분류가 언급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가능성은 아마도 둘이다. 우선 존재론적 다원주의 내지 연질 존재론에 관한 논의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세미나는 물론 논문 자체가 이 주제들에 관해 언급하는 경우를 거의 본 적 없다. 특정 인물(카르납, 퍼트남, 콰인, 데이빗슨, 로티, …)을 소개하는 중에 그 인물의 핵심적 사상이라는 이유로 딸려 적히곤 할 뿐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카르납의 위상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분석철학 전문가들은 물론 카르납의 논문 몇 편을 이미 읽은 사람들이지만, 카르납의 존재론적 측면, 특히나 Aufbau에서 그려지는 측면에 집중적으로 연구한 적이 있지는 않아 보인다.

최근에서야 나는 나의 정체성(?)을 신카르납주의자로 간주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되었으니 신카르납주의의 생각을 옹호할 필요도 있다. 그러나 내가 무엇을 옹호해야 하는지 자체가 많이 소개되어 있지 않다는 것은 내가 무엇을 옹호하는지를 어필하기 위해 선결해야 할 이런 저런 작업들을 요한다. 왜 어떤 주장은 이론 내적으로만 타당한가? 왜 콰인주의자들은 카르납주의를 논박하지 못하는가? 왜 이 주장은 여전히 실재론적인가? 등등에 관한 해명이 여기에 개입할 것이다.

카르납 및 카르납주의자들의 글을 읽는 모임을 꾸리는 것은 어떨까 생각이 든다. 이름도 정해 놓았다. “졸음쉼터: Car-n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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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확정자 그리고 두 종류의 현실주의

가브리엘 콘테사는 이 논문에서 양상 현실주의를 '순한맛'(softcore) 현실주의와 '매운맛'(hardcore) 현실주의로 구별한다. 전자는 스톨네이커로 대표되는 전통적 현실주의이고, 후자는 성향주의로 대표되는 새로운 현실주의이다. 저자는 후자에 대해 제기되는 문제에 대응하고 전자에 대해 새로운 문제를 제기하며 매운맛 현실주의를 옹호하고자 시도한다.

변화들: 다시 여는 말

블로그에 몇 가지 변화를 줬다. 1. 주소를 바꿨다(https://philtoday.kr). 보다 오랫동안 사용하고, 뉴스레터와 연계하기 위해 오래 전부터 계획하던 생각이다. 이에 맞추어 외부용 메일(wj@)과 뉴스레터용 메일(newsletter@) 역시 본격적으로 사용할 예정이다. 명함에 반영해야지. 2. 블로그 이름도 바꿨다. “백야”를 버리고 “오늘의 철학”으로 왔다. 사적인 공간의 이름이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