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논리학 시리즈는 현대 논리학에 대한 포괄적이고 기초적인 이해를 위한 자료들을 제공합니다.
1.9. 자연어 논증의 형식화
지금까지 \(Pr\)을 규정하고, \(Pr\)이 갖는 성질들을 살펴보았다. 이렇게 규정된 \(Pr\)의 쓸모는 결국 명제를 단위로 하는 자연어 논증의 평가를 보다 용이하게 하는 데에 있다. 자연어 논증을 구성하는 문장들을 \(\mathcal{L}_{Pr}\)의 문장으로 번역한 뒤 그 논증의 구조를 \(Pr\) 내에서 구현한다면, 그 자연어 논증을 \(Pr\)의 구문론적 증명 절차를 통한 증명으로 재구성할 수 있을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Pr\)의 의미론을 이용하여 그 타당성을 검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한 첫 단계는 자연어 논증을 \(\mathcal{L}_{Pr}\)의 문장으로 번역하는, 또는 형식화하는 일이다. (1.2)와 (1.3)에서 보았듯, \(\mathcal{L}_{Pr}\)의 구문은 문장 기호와 네 개의 문장 연결사(\(\neg,\land,\lor,\supset\))으로/만 구성된다. 그리고 문장 기호는 명제, 즉 진리값을 갖는 존재자를 표현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대략 다음과 같은 (이를테면 ‘구문론적’) 번역 지침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편의상, 어떤 명제의 참 또는 거짓을 주장하는 자연어 문장을 “진술statement”이라고 부르자):
- 모든 진술은 \(p_i\)로 번역될 수 있다.
- 진술 \(s\)가 ‘...가 아니다’를 통해 어떤 진술을 부정하는 문장이라면, \(s\)는 \(\neg p_i\)로 번역될 수 있다.
- 진술 \(s\)가 ‘... 그리고 ...’를 통해 두 진술을 연결해주는 문장이라면, \(s\)는 \(p_i\land p_j\)로 번역될 수 있다.
- 진술 \(s\)가 ‘... 또는 ...’를 통해 두 진술을 연결해주는 문장이라면, \(s\)는 \(p_i\lor p_j\)로 번역될 수 있다.
- 진술 \(s\)가 ‘만일 ...라면, ...이다’를 통해 두 진술을 연결해주는 문장이라면, \(s\)는 \(p_i\supset p_j\)로 번역될 수 있다.
하지만 이 지침은 완전하지 못하다.[1] 자연어의 접속사들 중에는 “그리고”와 동의어인 다른 단어들이 있고, 또 때로 “또는”은 \(\lor\)과 달리 둘 중 하나의 진술만이 참임을 주장하기 위해 쓰인다. 조건문의 경우는 더 문제가 많아서, “...라면 …이다” 형식의 자연어 문장이 \(Pr\)의 \(\supset\)과 전혀 의미가 다른 경우가 많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약간은 복잡하지만, 다음의 (이를테면 ‘의미론적’) 지침을 사용하는 것이 보다 권장할 만할 것이다.
- 모든 진술은 \(p_i\)로 번역될 수 있다.
- 진술 \(s\)가 어떤 진술이 거짓임을, 그리고 오직 그것만을 단언하는 문장이라면, \(s\)는 \(neg p_i\)로 번역될 수 있다.
- 진술 \(s\)가 어떤 두 진술이 모두 참임을, 그리고 오직 그것만을 단언하는 문장이라면, \(s\)는 \(p_i\land p_j\)로 번역될 수 있다.
- 진술 \(s\)가 어떤 두 진술 중 하나 또는 모두가 참임을, 그리고 오직 그것만을 단언하는 문장이라면, \(s\)는 \(p_i\lor p_j\)로 번역될 수 있다.
- 진술 \(s\)가 두 진술 \(a\), \(b\)에 대해, 두 진술이 모두 참이거나, 아니면 \(a\)가 거짓임을, 그리고 오직 그것만을 단언하는 문장이라면, \(a\)의 번역이 \(p_i\)이고 \(b\)의 번역이 \(p_j\)일 때, \(s\)는 \(p_i\supset p_j\)로 번역될 수 있다.
그런데 이 지침을 사용하는 경우에도 나름의 모호함이 있을 수가 있다. 가령, 의미가 같지만 다른 구문을 취하는 두 자연어 문장은 \(\mathcal{L}_{Pr}\)의 동일한 문장으로 번역되어야 하는가, 또는 다른 문장으로 번역되되 둘 사이의 필요충분조건 관계를 가정해야 하는가? 유감스럽게도, 이러한 사항을 결정하는 일은 분명한 지침을 주기보다는 맥락에 따라 번역자가 논리적 감에 의존해 수행해야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일단 이 점은 넘겨 두도록 하자.)
여하간 각 자연어 진술들을 알맞게 번역하기만 했다면, 우리는 진술 \(s_1, ..., s_{n-1}\)을 전제로 해 \(s_n\)을 결론으로 갖는 자연어 논증을 다음의 형식으로 재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단, \(\phi_k\)는 임의의 \(\mathcal{L}_{Pr}\) 문장, \(\phi_m\)은 \(s_n\)의 형식화): \[\phi_1, ..., \phi_{m-1} \sslash \phi_m \tag{1.9}\](단 “\(\sslash\)”는 전제들과 결론의 구분선.)
1.10. 논증의 평가
논증을 형식화했으니, 이제 평가의 차례이다. 전제와 결론으로 구성된 자연어 논증을 평가함에 있어, 두 가지 지표가 존재한다. 타당성과 건전성이 그것이다. 어떤 논증이 타당한 것은, 전제들이 모두 결론을 지지하는 경우에 해당한다. 한편 어떤 논증이 건전한 것은, 그 논증이 타당하면서, 또한 그 전제들이 모두 참인 경우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일단 우리는 자연어 논증이 \(Pr\)에서 타당하다는 것을 아래와 같이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1.9)를 따라 형식화된 논증 \(A \defeq\phi_1, ..., \phi_{m-1} \sslash \phi_m\)에 대해,\[A\text{가 타당하다} \iff \{\phi_1, ..., \phi_{m-1}\}\vDash\phi_m\tag{타당성}\]
이제 건전성의 차례이다. 여기에서는 ‘전제들이 모두 참’이라는 것이 문제가 된다. 한편 자연어 논증이란 세계의 어떤 시점에서 진술된 것이므로, 해석 함수는 그 맥락에 따라 이미 주어져 있어야 할 것이다. 이를 “의도된 해석intended interpretation”이라고 부르도록 하자. 우리가 관심 갖는 논증들에 있어, 그 전제들이 모두 참인지는 그것이 논리적으로 참인지가 아니라, 그것이 그 맥락에서 사실로서 성립하는지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이 점을 고려해, 발화 맥락 \(C\)에서 이루어진 자연어 \(\mathcal{L}_N\)의 논증에 있어 \(Pr\)에서의 의도된 해석 \(\mathcal{I}_{IntC}\)를 다음과 같은 메타 논리적 표현으로 정의할 수 있을 것 같다:\[\eqalign{
&\text{$p_i$에 대응되는 자연어 문장 $s_i$, 그리고 모든 $i$에 대해,}\\
&\text{($s_i$가 참이다)$_{\mathcal{L}_N, C}$} \iff (v^{\mathcal{I}_{IntC}}(p_i)=1)_{\mathcal{L}_{Pr}}
}\tag{의도된 해석}\] 이제 우리는 다음과 같이 자연어 논증의 건전성을 정의할 수 있다: \[\eqalign{
A\text{가 건전하다} \iff &(i)& A\text{가 타당하다;} \\
& (ii)& 1\leq k\leq m-1\text{인 모든 $k$에 대해, }\\&&v^{\mathcal{I}_{IntC}}(\phi_k)=1.
}\tag{건전성}\]
논증 평가의 예시
위에서의 고찰을 바탕으로, 실제로 자연어 논증을 평가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우리가 고려할 논증은 다음과 같다[2]:\[\eqalign{
&1.&\text{지훈이 제네시스를 갖고 있다.}\\
&2.&\text{따라서 지훈이 제네시스를 갖고 있거나, 보현이 부산에 있다.}
}\tag{1.10}\]
(1.10)은 다음과 같은 논증으로 형식화될 수 있을 것이다: \(p \sslash p\lor r\). 그리고 이는 타당한 논증이다. \(p\)가 \(p\lor r\)을 함축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1.10)은 그 자체로는 건전한 논증은 아니다. 일단 (1.10)의 맥락 \(C_1\)에서 지훈이 제네시스를 갖고 있다고 하자. 그렇다면 \(v^{\mathcal{I}_{IntC_1}}(p)=1\)이며, (1.10)은 건전한 논증이다. 그러나 그 맥락이 지훈이 제네시스를 갖고 있지 않은 \(C_2\)였다면, \(v^{\mathcal{I}_{IntC_2}}(p)=0\)이며, 따라서 (1.10)은 건전하지 못하다.
같은 방식으로, 우리는 (1.10)보다 더 복잡한 자연어 논증에 대해서도 형식화와 형식 논리적 도구들을 통해 그 타당성과 건전성을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1.11. 명제 논리의 한계
그러나 명제 논리는 한계를 갖는다. 예컨대, 우리는 다음과 같은 구조의 논증을 직관적으로 타당하다고 여긴다:\[\eqalign{
1. &\text{모든 사람은 죽는다.} \\
2. &\text{소크라테스는 사람이다.} \\
3. &\text{따라서 소크라테스는 죽는다.} \\
}\tag{1.11}\] 그런데 지금까지의 논의를 고려할 때, 이와 같은 자연어 논증을 형식화할 경우 이 논증은 구문론적으로 증명될 수 없는 종류의 논증이 된다. 나아가 의도된 해석 하에서는 이 논증이 타당하겠지만, 어떤 의도되지 않은 해석, 가령 2를 거짓으로 간주하는 해석 하에서는 이 논증은 부당한 논증이 된다. 즉, (1.11)은 논리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논증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결과와 달리 우리는 (1.11)과 같은 논증이 논리적으로 참이며, 어떤 증명 절차를 통해 증명될 수 있는 그러한 종류의 논증이라는 직관을 갖는다. 왜 그런 것일까? 보건대, 이 문장들은 주어-술어의 구조를 가지며, 1과 2의 연언conjuction(즉, ’그리고’를 통한 결합) 이 2의 주어에 대한 어떤 함축들을 갖고, 그 함축 중 하나가 바로 3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Pr\)에는 이러한 구조와 함축 따위를 다룰 수 있는 구문론적, 의미론적 자산이 없다!
따라서 우리가 (1.11)와 같은 논증들을 논리 체계를 통해 잘 다루고자 한다면, 더 큰 표현력을 갖는 체계를 사용해야 할 것이다. 주어-술어 구조의 문장들을 표현할 수 있는 구문론과, 이로부터 만들어진 구문과 문장을 해석, 평가할 수 있는 의미론, 그리고 이러한 체계에서의 증명에 관한 규칙들이 필요하다. 우리가 이어서 살펴볼 1차 양화 논리는 이를 위한 모범 사례이다.
각주
1. Cf. 기호 논리학(벤슨 메이츠 저, 김영정, 선우환 역), pp. 141-142.
2. Cf. Edmund Gettier, Is Justified True Belief Knowledge?, Analysis 23.6: pp. 121-123. 게티어의 논문에 관해서는 이 글(링크)을 참조.